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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리뷰]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 (No other choice)

by GJ88 2026.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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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던진 '종이' 한 장의 서늘한 질문, 우리는 기계인가 사람인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나 역시 이번 기회에 넷플릭스를 통해 이 화제작을 접하게 되었다. 확실히 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안방 1열 관객들에게 동시 공개되다 보니 영화에 대한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동시에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모양새다.
누군가는 "역시 박찬욱이다, 작은 화면으로 봐도 미장센이 압도적이다"라며 찬사를 보내지만, 넷플릭스 특성상 가벼운 킬링타임용으로 접근했던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너무 괴기하다", "불편해서 끝까지 못 보겠다", "주인공이 너무 찌질하고 잔인하다"며 고개를 젓는 반응도 상당수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직접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나는 그 '괴기스럽다'는 불호의 반응이 단순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살인 장면이나 박찬욱 특유의 연출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현실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생존을 위해 인간성을 거세해야 하는 현대 사회의 민낯'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것도 블랙코미디라는 이름으로 비틀어 보여주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본능적인 거부감일지도 모른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들이 연속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 이것이 바로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 불편하지만 매혹적인 영화에 10점 만점에 8점을 주고 싶다.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자동화와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블랙코미디를 통해 너무 무겁지 않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터 처럼 실직을 한 만수는. 결국 가장으로써 살아남기위에 해서는 안될짓까지 하게 된다.

작업반장의 손(Hand)과 기계의 팔(Arm), 그 잔혹한 교체

영화의 주인공 '만수(이병헌 분)'는 제지 회사 공장에서 25년을 근속한 베테랑 작업반장이다. 그는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아니다. 기름밥을 먹으며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 났는지 알고, 종이의 결만 만져봐도 품질을 가늠할 수 있는, 그야말로 '종이 장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의 인생은 그가 평생을 바쳐 만들어온 종이처럼 아날로그적이고 성실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효율화, 자동화, 그리고 인공지능(AI) 기반의 스마트 팩토리 도입. 그 속에서 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만수가 몸담았던 공장에도 들이닥쳤고, 결국 만수는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는다. 평생을 바친 현장에서, 자신이 관리하던 기계들에게 자리를 뺏긴 것이다.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지만, 나이 많고 고스펙(혹은 고임금 숙련공)인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다. 그와 비슷한 처지의 경쟁자들은 넘쳐나고,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벼랑 끝에 몰린 만수는 결국 끔찍한 결심을 하게 된다.

다른 제지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만수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나보다 조건이 좋은 경쟁자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면, 내 차례가 오지 않을까?"

이 황당하고도 무시무시한 발상은 곧 현실이 된다. 만수는 재취업 경쟁자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한 명씩 찾아가 사고를 위장해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손을 떨며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점차 생존을 위한 살인에 무감각해져 간다.
그 과정에서 만수는 또 다른 경쟁자이자,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인물 '범모(이성민 분)'와 그의 아내 '아라(염혜란 분)'를 마주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범죄 사실을 눈치챈 아내 '미리(손예진 분)'와의 관계에서도 미묘한 변화를 겪는다. 결국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꿈에 그리던 제지 공장에 재취업(혹은 복직)에 성공한 만수.
하지만 영화의 엔딩은 그가 상상했던 승리의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텅 빈 공장. 사람은 오직 만수 혼자뿐이다. 모든 공정이 자동화된 기계들이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그곳에서, 만수는 멍하니 서 있다. 그리고 공장 밖에는 그 기계가 뱉어낸 종이 박스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화물트럭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다. 이 압도적인 대비를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인간을 편하게 만들어준 기술의 발전. 그 발전이 인류를 향해 총을 겨누기 시작했다.

아날로그의 종말과 자동화의 역습

[종이 vs 기계: 상징의 충돌] 영화 내내 '종이'라는 소재는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 쓰인다. 만수에게 종이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자,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만 완성되는 아날로그의 결정체다. 하지만 그를 밀어낸 '자동화 시스템'은 차갑고, 단단하고, 빈틈이 없다.
영화는 만수가 종이를 만지는 거친 손과, 매끄럽게 돌아가는 기계 팔을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특히 만수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이 투박한 연장들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가장 최첨단의 자동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가장 원시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 이 설정은 기술 발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거대한 아이러니다. 만수는 기계에게 일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발버둥 쳤지만, 역설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인간성을 상실하고 '살인 기계'가 되어버린 셈이다.
[엔딩의 미학 : 사람은 없지만, 수요는 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마지막 장면이다. 만수가 그토록 원해서 들어간 공장에는 정작 '사람'이 없다. 그 넓은 공장에 홀로 남겨진 만수의 모습은 성공한 작업반장이 아니라, 거대한 기계 시스템을 잠시 지켜보는 부품 중 하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장 밖에는 수많은 화물차가 줄을 서 있다. 이는 "종이를 만드는 사람은 필요 없지만, 종이를 쓰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자본주의의 서늘한 진리를 보여준다. 생산 과정에서 인간은 철저히 배제되지만, 소비와 유통의 과정은 여전히 맹렬하게 돌아가는 이 기이한 풍경. 만수는 결국 기계를 부리는 주인이 된 것이 아니라, 기계들의 틈바구니에 갇힌 고독한 수감자가 된 것은 아닐까.

각 인물들은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 여러가지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도태된 자와 공범이 된 가족들

[범모(이성민 분): 과거에 갇힌 자, 고집불통의 비극] 이성민 배우가 연기한 경쟁자 '범모'는 만수와 가장 대비되면서도 닮아있는 인물이다. 그는 만수처럼 제지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독이 되어 그를 갉아먹는다. 범모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실을 직시하고 다른 일을 찾지도 않는다. 그의 아내 아라(염혜란 분)가 "제지일 말고 다른일 찾아보고 해보자"고 제안할 때마다, 범모는 불같이 화를 낸다. "내가 종이를 만지던 사람이야!" 그는 과거의 영광, '종이 기술자'라는 타이틀에 매달려 현실을 부정한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혹은 읽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과거의 방식과 자존심만을 고집하는 그의 모습은 '꼰대'라 불리며 도태되어가는 기성세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가 붙잡고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이미 사라져 버린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아라(염혜란 분): 생존을 위해 남편을 지우다] 그런 범모를 지켜보는 아내 '아라'의 서사는 서늘하다. 그녀에게 남편의 고집은 더 이상 '장인 정신'이 아니라 '생존의 위협'이다. 돈은 벌어오지 못하면서 자존심만 내세우며 화를 내는 남편. 아라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만수가 범모를 제거하려 했을 때, 영화는 묘하게도 범모의 죽음이 만수의 손이 아닌, 아내 아라의 묵인 혹은 적극적인 방치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아라는 변화하지 않는 남편을 '폐기 처분'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도모한 것이다. 염혜란 배우의 무표정한 얼굴 뒤로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절망과 살의가 스쳐 지나갈 때, 관객은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
[미리(손예진 분): 남편의 죄를 덮는 침묵의 카르텔] 손예진 배우가 연기한 만수의 아내 '미리' 역시 흥미롭다. 그녀는 어느 순간 만수의 살인 행각을 눈치챈다. 보통의 윤리관이라면 신고를 하거나 말려야겠지만, 그녀는 침묵을 선택한다. 아니, 오히려 만수가 가져오는 '재취업'이라는 결과물과 경제적 안정을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거나 모르는 척 눈을 감는다. 아라와 미리, 두 아내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는 명과 암이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내 남편이 살인자일지라도, 혹은 내 남편이 죽어야만 내가 산다면, 기꺼이 윤리를 저버리는 이기심. 영화는 만수만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 괴물을 묵인하고, 혹은 스스로 괴물이 되어 그 과실을 따먹는 가족들 또한 '어쩔 수 없다'는 핑계 뒤에 숨은 또 다른 공범임을 시사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급변하는 요즘 우리는 어떻게 생존을 해야할까?

AI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했던 건, 이 이야기가 결코 판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 또한 회사를 다니며 하루가 멀다 하고 '성력화', '자동화', '원가 절감'이라는 단어를 듣는다. 공장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도 어떻게 하면 사람을 줄이고 그 자리를 AI나 로봇으로 대체할 것인지가 논의된다. 그것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자 생존 전략이라고 포장되는 것이 현실이다.
생성형 AI가 글을 쓰고, 코딩을 하고, 심지어 예술까지 하는 세상. 우리가 굳건하다고 믿었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장인의 영역'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영화 속 만수가 겪은 공포는 이제 직종을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만수처럼, 혹은 아라처럼 괴물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범모처럼 과거의 자존심을 지키다 비참하게 도태될 것인가?" 혹은,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면서도 이 변화의 파도에 올라탈 방법은 없는가?"
영화는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만수는 괴물이 되어 살아남았지만 고독했고, 범모는 변화를 거부하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살해당했다. 감독은 이 극단적인 사례들을 통해 관객에게 되묻는다. "이 기술 발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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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평점 : 8.0점 / 10.0점
아날로그의 장인이 사라진 공장, 그 차가운 기계음 속에 남겨진 인간성의 백골. 그리고 그 무거움을 비트는 블랙코미디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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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이토록 무겁고 심오한 주제를 특유의 블랙코미디로 풀어냈다. 만수가 살인을 저지르려다 실패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부닥치는 장면들, 클래식 음악과 핏빛 화면의 부조화, 그리고 이병헌의 찌질하면서도 광기 어린 연기는 영화가 지나치게 우울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이병헌은 '작업반장'이라는 캐릭터에 맞게 투박하면서도 예민한 생활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고, 이성민은 고집불통인 가장의 모습을 얄미우면서도 짠하게 그려냈다. 손예진과 염혜란은 우아함과 평범함 뒤에 숨겨진 서늘한 현실 감각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극의 균형을 맞췄다.
결론적으로 <어쩔수가없다>는 넷플릭스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소비하기엔 꽤나 묵직한 돌덩이 같은 영화다. 보고 나면 마음이 무겁고, 출근길에 마주칠 자동문이나 키오스크조차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불안을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가장 박찬욱답게 풀어낸 수작임은 분명하다.
만약 당신이 오늘도 회사에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누군가의 희생을 방관했거나, 혹은 변화가 두려워 범모처럼 귀를 막고 있지는 않은가? 이 영화는 당신의 거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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